마포(麻布) — 실재와 환영의 간극에서

70년대를 풍미한 단색파 작가들 중에서 박장년만큼 특이한 존재도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작가들이 단색 추상화에 빠져있을 때 유일하게 그는 단색을 사용하여 형상을 그렸다. 생마포 위에 마포의 주름을 그리는 동어반복적인 작업을 했던 것이다. 그 무렵의 한국 현대 화단은 이른바 다원주의가 성행을 했다. 70년대 중반, [앙데팡당], [에꼴 드 서울], [서울현대미술제]와 같은 대규모 전시회가 덕수궁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면 박장년의 마포 작품을 흔히 볼 수 있었다. '마포(麻布)'라는 일관된 명제를 지닌 박장년의 작품은 마치 마포로 이루어진 커튼이 실제 허공에서 드리워진 것처럼 사실적인 느낌을 주었다.

극사실 기법을 사용하여 커튼을 그리긴 했지만 그의 작업을 딱히 극사실회화의 범주에 넣기가 주저되는 이유는 그가 풍경의 일부로서의 커튼이 아니라 '대상의 개념화'에 관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부분이 바로 그의 작업을 개념미술의 연장으로 볼 수 있는 판단의 근거이다. 박장년은 허상이란 시각적 트릭을 부정하는 수단으로 마포라는 소재를 등장시킴으로써 개념의 유희를 즐겼다. 그래서 "당신이 보는 마포의 커튼은 곧 마포이다"라는, 프랭크 스텔라의 "당신이 보는 것이 곧 당신이 보는 것이다 (What you see is what you see)"라는 유명한 발언과도 유사한 명제의 도출이 가능하다. 그는 마포 위에 마포라는 직물을 극사실적으로 그림으로써, 그려진 커튼이 실은 마포에 지나지 않는다는 '실재'와 '환영' 간의 결코 화해할 수 없는 간극을 문제삼았던 것이다.

— 윤진섭, 「마포(麻布)-실재와 환영의 간극에서」 (2018) 중

지지체와 일루전의 일체화

박장년은 앵포르멜의 세례를 받으면서 출발한 세대의 작가다. 그가 수학하던 50년대 후반과 60년대 초는 앵포르멜의 열기가 이 땅을 풍미하고 있을 때였다. 당시 젊은 세대의 미술지망생들이 거의 그랬던 것처럼 그 역시 이 열병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그의 선배들이 했던 것처럼 그의 화면도 어둡고 심각했다. 그러면서도 그 그의 화면이 주변의 앵포르멜 작가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격렬한 제스처 대신 무겁게 침잠하는 심연과 같은 기운이 지배하고 있었음이다.

때로는 화면으로서의 지지체와 이 위에 가해진 표현이 거의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일체화되는 경향도 보여주었다. 어쩌면 지지체와 이 위에 서술되는 이미지가 분화되지 않은 채 남아난 그의 70년대 후반부터 등장하는 마포의 작업은 이 같은 방법에서 연유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즉 지지체 자체가 회화로서 자립한다는 방법의 신장이 마포작업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 것이 아닌가 본다.

— 오광수, 「지지체와 일루전의 일체화」 (2002) 중